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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표류하는 국가 아젠다: 고교평준화
작성자 : 최고관리자 등록일시 : 2008-05-09 15: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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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표류하는 국가 아젠다: 고교평준화
30년 논쟁 - '학교 학생선택권' 늘릴때
中3병·고교간 격차 해소 공헌 크지만
상위 5%內 학생들 학력저하 문제 남겨
감정싸움 자제 - 제도보안 지혜 모아야

한국일보 2004.6.21. 김영화 기자

정부가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를 도입한 지 만 30년이 지났으나, 도입 당시부터 제기된 평준화 논란은 국가 성장전략과 맞물려 갈수록 확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반대론자들이 평준화제도를 교실붕괴와 사교육비의 주범으로 몰면서 공공연히 폐지를 주장하는 형국으로까지 발전했다.
반면 평준화 유지론자들은 교육의 형평성과 기회균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계층 통합, 우수인재 확보 등과 직결돼 있는 평준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난제임에 틀림없다.

* 평준화 30년의 공과

평준화가 우리 교육에 미친 영향은 제도 도입 직전의 교육상황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74년 이전만 해도 중학교 학생의 약 30%가 과외수업을 받았고, 지방에서 서울이나 부산의 중학교로 전입한 학생이 1만5,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입시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중3병’이라고 불리던 명문고 입학경쟁은 이제 사라졌다. 평준화가 중학교육의 정상화, 고교간 격차 해소 등에 기여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95년 평준화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과열된 고교 입시경쟁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평준화 제도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판시, 이런 긍정적 평가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교실붕괴 현상으로 공교육의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 99년부터 평준화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했다. 특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1년 평준화 해체를 언급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됐다. 평준화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현행 평준화 정책이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와 미래의 우수 인재 확보와 국가경쟁력 확대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사교육비 증가 등도 평준화의 문제점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평준화의 틀을 과감히 깨고 학교에 학생 선발권을 되돌려줘야 공교육의 위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선발제도의 문제인가, 교육의 문제인가

보다 나은 조건에서 교육 받고 싶어하는 개인의 권리와 최소한의 사회통합 전략으로서 평준화가 필요하다는 사회 일반의 목소리는 상충할 수밖에 없다. 대립각은 선명하지만 보다 나은 교육이라는 명제 앞에서 의견수렴은 가능하다.

폐지론을 앞장서 반대해온 전교조도 지난 30년 동안 속칭 ‘뺑뺑이’ 추첨제도에만 안주해 온 평준화 정책이 한계에 부딪혀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입시교육 강화, 사교육비 증가, 사회적 위화감 확대 등에 대한 해결방안이 없이 평준화 해체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폐지론자들도 “평준화의 대안은 과거의 비평준화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과 같이 학교선택권을 보장하는 경쟁력 있는 학교체제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준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유리한 논거만 부각하거나 상대방을 이념공세로 몰아치는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대표적인 것이 학력의 하향 평준화이다. 최근 KDI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한 주범이 평준화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평준화 지역의 성적이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오히려 높았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으며 맞붙었다.

그러나 두 지역의 교육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어렵고, 그동안 표준화한 학력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한 적이 없어 평준화 지역 내에서도 얼마나 학력저하가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진곤 한양대(교육학) 교수는 “학문적으로 정확성이 결여된 연구결과로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교실붕괴나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이 평준화인지 여부도 좀 더 객관적으로 검증해 봐야 한다.

정부는 평준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 대안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늘려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쪽이다. 하지만 특수목적고가 입시명문고로 전락하고 일부 대학이 내신성적에서 일선 고교의 등급차를 은밀히 적용하는 상황이어서 좀 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부권 동국대(교육학)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외국처럼 거주지 인근학교로 추첨 없이 배정하는 방법으로 전환하되, 학생이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휘샬오令돈?상위 3~5% 내의 우수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학교가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재갑 교총 대변인은 “우선 선지원 후추첨제 확대 등을 통해 학교선택권을 일정 정도 늘리는 현실적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사립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해나가되, 교육의 수월성(excellency)과 평등 두 가치를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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