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상단 글자

자료실

HOME     알림마당     자료실

[기사]세상만사: 아이들을 위한 평준화 논의
작성자 : 최고관리자 등록일시 : 2008-05-09 14:22:20
첨부파일 :
세상만사: 아이들을 위한 평준화 논의

국민일보 2004.02.10. 임순만 논설위원

아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한 여성을 알고 있다. 자신의 이혼 문제 때문에 성장기의 아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늘 간절하게 기도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 아들이 어머니의 노력에 힘입어 사랑이 넘치는 아이로 성장해갈 것을 믿었다. 그 아이가 겨울방학 기간 중에 열린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했다. 수련회에서 강사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 중에서 단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바로 그 아이였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자녀를 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때로는 일방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아무리 애를 태우더라도 아들이 단 한 번의 사랑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고교 평준화 논란이 그런 인상을 준다. 학생들을 위해 교육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본질적인 논의라기보다는 논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싸움을 위한 싸움 같다는 말이다.

평준화 교육의 폐단은 그동안 적잖이 지적돼 왔다. 평준화 도입의 일차적 취지는 지난 1960년대 아이들의 성장발육마저 걱정될만큼 입시경쟁이 심각해지자 우리 사회가 그 고통을 대학입시로 유예시키기로 동의한 데에 있다. 따라서 문제는 대입을 향해 누적될 수밖에 없었지만 교육 당국은 자율성 확대 등의 정책으로 그 부작용을 해결하는 쪽보다는 평준화 정착을 위한 규제 중심으로 정책을 전개시켜 왔다. 그 결과 학교 교육과 대학입시의 단순성이 사교육을 통해 쉽게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됐고 그럼으로써 공교육은 날로 외면당하고 있다. 오늘의 공교육은 엘리트 교육 기능이 약하고 학교 선택권이 제한돼 있으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가 낮아 대폭적인 수술을 받아야만 할 처지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이 평준화 때문이며 평준화 정책만 폐지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는 평준화 논리보다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인다. 평준화 때문에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거나 국가 경쟁력의 1차적 자원인 우수 인력을 육성할 수 없다는 논리는 가설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정 사실화해서 교육정책의 골간을 바꾸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더구나 이 문제를 이념 논쟁으로 발전시켜가는 것은 싸움의 적대 구조를 좀더 분명히 하겠다는 것 외에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를 보면 국제비교조사 결과 우리 나라 전체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은 읽기 6위,수학 2위,과학 1위 등 매우 높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읽기수학흥미도는 19위,읽기수학자아개념도는 20위로 OECD 20개국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학업성취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도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이렇게 낮다는 것은 단선적 사교육에 의한 문제풀이 능력만 발달돼 있을 뿐 창의적 학습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창의성에 의해 국가 경쟁력의 승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지식정보화 세계에서의 인재 양성이나 경쟁력 향상이라는 목표는 평준화 폐지로 담보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보다는 학벌주의·학력주의 가치관이 야기하는 왜곡된 교육경쟁구조가 문제이며,시장 논리에 맡길 경우 이런 구조는 사교육에 의해 더욱 심각하게 왜곡될 뿐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난달 말 서울대 사회과학원의 조사 결과는 고소득층의 자녀들이 사교육을 통해 명문대를 장악할 수 있다는 시장 교육의 함정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획일적 평등주의 교육은 분명 문제지만 참다운 학업성취를 위한 개념 정립과 그를 위한 종합적인 시스템 개발 없이 정치구호를 방불케 하는 평준화 폐지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시장의 수급 논리에 의해 교육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장에는 평준화 폐지 이후에 나타날 교육적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들어 있지 않다.

교육체계 전반의 재구조화를 요구하는 이런 문제는 평준화냐 비평준화냐의 이분법적 접근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는 부모는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진학률이 98%를 넘어서 일반교육의 성격을 띤지 오래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종합적인 철학과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전글 [기사]기자의 눈: `학교선택권` 말뿐인가
다음글 [기사]窓: 더 급한 非평준화 지역 차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