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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장명수 칼럼: '평준화' 반대와 찬성
작성자 : 최고관리자 등록일시 : 2008-05-09 14: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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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평준화' 반대와 찬성

한국일보 2004.02.02

고교 평준화 지지자들은 불평등 구조 타파에 관심이 많고, 못 가진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인가. 평준화 반대자들은 불평등에 무관심하고, 가진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평준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기에 앞서 평준화 고수파나 반대파에 대한 선입관부터 정리해야 한다. 교육 제도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의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논의 자체가 흑백논리로 차단되는 우리 현실은 잘못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누가 서울대에 오는가’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30년 동안의 서울대 입학생을 분석한 그 보고서에 의하면 평준화이후 고소득층 자녀의 입학 비율이 다른 계층 자녀에 비해 17배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준화로 우수학생들을 따로 교육할 수 없게 되면서 저소득층의 일류대 진학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그 보고서에 대한 반응은 정치논쟁을 방불케 한다. 평준화 고수파들은 서울대가 그 같은 보고서를 발표한 배경을 의심하고, 평준화 반대자들은 일부 내용을 확대하여 평준화 철폐를 주장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교육적인 접근 대신 찬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학력 세습 심화현상과 평준화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준화를 하지 않았다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리고 고소득층 자녀의 서울대 입학 비율도 결코 낮아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준화 폐지론을 서둘러 진화했다.

그는 또 “평준화 고수론에도 문제가 있지만 평준화가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는 생각도 문제다. 공교육을 먼저 내실화하고 사교육비 경감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지만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 평준화가 모든 재앙의 근원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평준화가 입시지옥과 사교육의 폐단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또한 확실하다. 그리고 공교육의 내실화는 사학의 자율권 보장 없이 불가능하다.

사립학교들의 활성화가 공립학교에 영향을 미치고, 공사립이 경쟁하여 공교육의 내실화를 앞당겨야 한다. 명문고들을 죽이고 사립학교들까지 평준화로 묶어서 결국 하향평준화가 되고만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1970년대 후반 평준화라는 이름아래 정부가 명문고들을 없앤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불 태운 것과 다를 게 없다. 평준화가 기여한 것은 중학생들의 고교 입시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인데, 오늘 초중고를 가리지 않는 사교육 열풍을 보면 그 효과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과거의 명문고들이 학벌이나 부의 세습에 기여했다는 지적도 과장된 면이 있다. 명문고들은 계층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명문고에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장학금을 늘린다면 명문고야말로 세습을 깨는 확실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습 문제는 2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

교육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평준화 제도를 바꾸거나 보완해야 한다.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다. 실력차가 심한 학생들을 한 교실에 수용하여 죽도 밥도 아닌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에게 ‘다리 묶고 함께 뛰기’를 시키는 것이 평등은 아니다.

일류만이 살아 남는다고 외치고 일류상품을 선호하면서 일류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정책에 반감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오늘의 ‘일류’란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다. 과거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만이 일류였지만 오늘은 각자 다양한 특성으로 다방면에서 일류가 될 수 있다. 그 다양한 교육을 평준화로 묶으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교육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국가 경쟁력이 뒤떨어지면 모든 계층이 타격을 입고 특히 저소득층의 타격이 커진다. 고교 교육을 평준화하던 70년대와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이념 문제가 아닌 교육 문제로 평준화를 재검토해야 한다. 교육엔 평준화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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