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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시'가 아닌 '학생선발제도'가 되어야
작성자 : 최고관리자 등록일시 : 2008-05-09 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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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 아닌 '학생선발제도'가 되어야

주간교육정책포럼 2003.11.27.
강익수 교사(서울 현대고등학교)

현안문제진단에 ‘공교육 정상화’와 ‘수능 공신력’에 대한 논쟁적인 성격의 글이 2주 연속해서 실렸다. 두 분의 글이 현안문제에 대한 진단으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교육적 원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주장도 있으며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면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대입제도 개혁 방안에 대한 반론과 보완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김정명신 님은 2주 전「정부는 공교육 정상화의 의지가 있는가」라는 글에서 고교 평준화는 확대,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교육의 공공성이나 사회성을 강화하는 개혁을 참여정부에 촉구하면서 대입제도 개혁, 대학 서열화 타파, 공교육 정상화 대책으로 전환해야 하며,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내신 석차 백분율의 비중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신석차 백분율의 비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교 교육활동에 대한 평가가 대입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 제시한 견해로 이해할 수 있지만 경험적 사실이나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교육평가의 원리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므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지난 주 양승실 님은「수능 공신력, 이대로 좋은가?」라는 글에서 점수 위주의 대입 선발 관행이 깨져야 하며 총체적 질 관리 시스템이 시급한 상황으로 교수-학습활동의 개선 및 충실한 평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대입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승실 님의 교육평가의 원리에 입각한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총체적 질 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 지면을 통해 대입제도 개혁을 위한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행 대입제도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이 잘못된 평가 개념과 방안에 근거하고 있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다. 교육평가란 기본적으로 가치를 전제로 하며, 가치에 대한 인식, 음미, 판단을 포함해야 한다. 가치 판단이 배제된 객관적 측정은 평가가 아니며, 숫자화된 내신 성적과 수능 점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대입제도는 ‘교육평가’가 아니라 가치 판단이 배제된 ‘측정’일 뿐이다.

‘입시(入試)’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현재 대학에 가는 것은 거의 시험을 통해서이고 결국 당락이 시험 점수로 결정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수능점수의 소수점 반올림이 법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었지만 수능 점수뿐 아니라 내신성적 산출에 있어서의 과목석차백분율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소수점에 목을 매도록 하고 있다. 과연 수능점수 315점과 314점의 학력 차는 있는 것인가? 영어 성적 91점과 90점의 차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지을 정도의 학력 차라 말할 수 있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점수 1점 차가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짓고 있다. 지금 학생들이 제기하고 있는 수능 문제 오답 판정에 대한 시비도 이에 근거하는 것이다. 만약 김정명신 님의 주장대로 내신 석차 백분율의 비중을 강화하게 되면 학교의 교수-학습활동에 대한 평가에 너무나 과도한 변별력을 요구하게 되어 실수로 문제를 틀려 내신 석차가 떨어진 학생에게는 그 과목의 석차 백분율이 대학 입학에 평생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내신석차 백분율 제도는 현재 시행 2년째를 맞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 운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바, 그 비중을 강화하는 것은 더 많은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며 학교 교육을 더욱 파행적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선택형 문제로 평가하는 수능이나 석차백분율이 적용되는 내신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입시에서의 실패자를 양산함으로써 개인의 삶마저 그늘지게 하고 말 것이다.

양승실 님이 주장하는 새로운 대입제도 구축을 위해서는 현행 대입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입시구조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 간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고등학교, 대학교, 학부모간에 학생선발 기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부는 단기적인 처방과 함께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를 통해 시험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평가가 가능한 학생선발제도를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이 참여하는 이러한 연구는 우수 학생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학생선발을 위한 교육적 평가 기준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과도한 사교육비를 경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는 외국 사례로는 미국의「8년 연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부러워하는 미국 대학의 학생선발제도는 1933년에서 1940년에 걸친 8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 걸쳐서 30개의 학교(또는 교육구)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8년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8년 연구」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운영과 대학교에서의 수학능력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의미있는 연구 결과를 보여 주었으며, 미국 중등학교의 교육과 대학의 입학제도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일류 대학의 입학 규정이 고등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해 왔던 미국의 교육적 상황이 8년 연구를 계기로 하여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학생선발제도로 발전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우리처럼 대입으로 인한 갈등과 위기의 시기가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낸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단기적인 개선 방안은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인교육의 원리에 따라 인지적 발달만이 아닌 정서적, 도덕적, 신체적 측면을 포함하는 통합적, 총체적 관점에서의 학생 선발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신과 대수능, 교과 영역과 비교과 영역, 심층 면접 또는 논술, 자기소개서 또는 추천서 등의 전형요소는 학생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있게 반영해서 학생들의 과도한 학업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경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2005년도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수능 체제는 학생의 진로에 맞게 언어, 수리, 외국어(영어) 중에서 2개, 사탐, 과탐, 직탐 중에서 1개를 선택적으로 반영하도록 반영 영역을 최소화하고 반영 비율도 낮추어야 하며, 표준오차 범위 내에서는 그 차이가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등급제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현재의 평준화제도에서 전 교과목에 적용되고 있는 절대평가제도는 그 교육적 의미가 크다 하더라도 상대평가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소수 특정 대학에서 적용하고 있는 평가 방식인 과목석차백분율제도는 그 부작용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교육과정의 교과목 중 대수능과 내신 반영에서 제외되는 교과목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교육과정에 제시되고 있는 교과목에 대해 통,폐합을 하고 학생들의 필수이수 교과목 수를 최소화해서 가급적 전 교과목이 반영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형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목은 학생들이 소홀히 하여 제대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부가 정책 결정 및 집행에 있어서 조급함에서 벗어나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땅의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입시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학생선발제도가 확립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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